존경하는 서동욱 의장님과 선배·동료 의원님 여러분!
그리고 김영록 도지사님과 김대중 교육감님을 비롯한 공직자와 언론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해양관광·해양역사가 살아 숨 쉬는 치유의 섬 완도 출신 이철 의원입니다.
저는 완도읍에서 여객선으로 50분 걸리는 누구나 가고 싶은 섬 청산도가 고향입니다. 오늘 본 의원은 완도에 발자취를 남긴 명나라 진린 도독과 이순신 장군의 우정을 기리는 ‘진린도독비’를 청산도에 복원·건립할 것을 요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달라는 ‘정명가도’를 명분으로 1592년 4월 시작된 임진왜란은 일본군의 부산포 상륙 이후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전 국토가 유린당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군을 이끌고 일본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조선을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조선 수군의 승전과 명나라의 참전으로 일본군은 수세에 처하게 되었으며 명나라와 일본의 5년에 걸친 강화회의도 결국 결렬되었습니다. 이후 발발한 정유재란 참전을 위해 진린 도독은 병력과 함선을 이끌고 이순신의 고금도 진지와 조금 떨어진 묘당도에 본영을 두었고 명나라 수군의 안녕과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묘당도에 관왕묘를 건립했습니다.
관왕묘는 우리나라 관우 사당 중 유일하게 수군이 건립하고 군신인 관왕과 함께 해신 마조신을 모신 의미 있는 사당으로 현재는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충무사로 변천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당시 수군을 돕기 위해 파견된 명나라 진린 도독과 이순신 장군은 깊은 우애를 나누며 네 번의 전투를 함께해서 승리했습니다. 고금도에서 조명연합군을 형성해 금당도 앞바다에서 왜구 27명의 목을 베고 배 6척을 침몰시킨 금당도 전투를 시작으로 고금도에서 30㎞ 떨어진 절이도까지 출전해 안택선 50척과 왜구 1만 6000여 명을 물리친 절이도해전, 순천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왜구를 섬멸하기 위해 고금도에서 무려 120㎞에 달하는 거리를 출정해 왜선 30척을 침몰시키고 3000여 명의 왜구를 살상한 예교해전,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 7년 전쟁을 끝낸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 생애 최후의 해전인 노량해전 등의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습니다.
진린 도독은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이순신 장군을 묘당도 월송대에 안치하고 직접 제문을 지어 장례를 치르고 큰 별이 바다에 떨어져 슬픔에 잠겼다며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1644년 청나라에 의해 명나라가 멸망하자 진린 도독의 유언을 받든 손자 진영소는 관왕묘가 있는 고금도로 이주하였으며 현재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순신 장군과 진린 도독의 깊은 우애에 대해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이, 2017년 중국베이징 대학 강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 언급한 바 있습니다. 또한 완도 청산도에 이순신 장군과 진린 도독의 사이가 매우 돈독했다는 내용을 담은 진린도독비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에서 이충무공전서, 충무공가승 등의 문헌자료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표출자료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앞서 말씀드린 대로 문헌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원문과 번역문입니다. 현재 청산도에 있어야 할 진린도독비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사라진 상황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동료 의원님 여러분!
완도 고금도는 이순신 장군과 진린 도독이 연합군을 결성해 함께 왜구를 무찌른 출발지이자 전쟁의 승리와 평화를 기원한 관왕묘가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또한, 완도 청산도는 고금도 외에 연합수군의 활동 장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진린도독비가 있었던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입니다.
이처럼 완도는 외세 침략에 항거한 두 장군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이에 청산도에 진린도독비를 복원·건립하여 중국 및 해외관광객을 유치하는 가교역할을 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발언제한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
가치와 철학을 알리는 역사적 장소로 매김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